연상호 감독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입니다. 개와 돼지를 싸움과 그 속에서 괴물이 되려는 아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림이 예쁘고 내용도 동화 같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과거와 현실의 진행혀인 현제를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연상호 감독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마당을 나온 암탉>과 더불어 2011년에 주목을 받았던 장편 애니메이션입니다. <지옥: 두 개의 삶>과 <사랑의 단백질>로 이름을 알린 연상호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이 세상 나왔다.. 2008년부터 구상한 것으로 알려진 돼지의 왕은 일반적인 만화영화의 틀을 벗어나 있다. 권선징악과 자연 친화, 우정과 사랑 혹은 구원의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관객은 적잖게 불편할 수 있다. 돼지의 왕은 18세 이상만 관람 가능한 '잔혹 스릴러'다 피비린 내자욱한 폭력과 죽음 혹은 죽임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사건들은 단단한 연쇄 고리로 치밀하게 축조되어 있고, 고리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한다. 무한폭력과 그것이 결과하는 죽음의 연속은 객석을 충격과 공포로 몰고 가며 급기야 관객들의 깊은 한숨과 절망을 낳는다.
개와 돼지들의 각축장
겉늙어버린 중학생들과 철근 콘크리트의 황량한 중학교가 나온다. 인간적 유대나 소통을 가져올 법한 흐뭇한 현재와 미래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열네 살 먹은 아이들이 개의 무리와 돼지의 무리로 패거리 지어 살아간다. 개의 무리는 부잣집 아이들이고 공부도 잘하며 덩치도 크다. 선생님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학급의 실장 같은 권력을 쥐고 있다. 돼지 무리는 가난뱅이들 자식이며 공부는 뒷전이고, 덩치도 작다. 교사들의 무관심 속에 아이들은 개들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때리면 때리는 대로 살아간다. 돼지에게는 규칙이 있고, 개에게는 개의 규율이 있다. 일방적인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시종 관철되는 중학교 1학년 교실. 교실은 주먹다짐과 몸싸움이 일상화된 공간이자, 개가 돼지를 거리낌 없이 성추행하는 공간으로도 그려진다.
괴물이 되고 싶은 아이
돼지의 왕은 제목처럼 돼지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아주 작고 나약하며 여전히 초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소년 경민. 자신보다 부유한 경민을 부러워하지만, 개들의 우두머리 강민에게 완전히 굴복하는 경민을 안타까워하는 종석. 그들은 연대의식을 맺으며 가까워진다. 거기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두 소년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아이가 철이다. 가출한 아빠에 대한 분노와 절망, 창녀 수준으로 전락한 엄마에 대한 동정과 반감, 세상의 차가 우 눈과 멸시에 익숙해지지 않는 자의식으로 가득 찬 소년 철이. 철이는 문자 그대로 악에 받칠 대로 받친 아이다. 크지 않은 덩치지만 철이는 개들과 싸움을 한다. 철이를 움직이는 동력은 배짱과 오기, 저주받을 세상을 향한 독기 서린 저주와 원망이다. 가만히 있으면 돼지는 죽을 때까지 돼지를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는 철이는 괴물이 되려 하고 한다. 그가 선택하는 방법은 또래 소년들이 엄두도 내기 힘든 살인적 폭력에 의지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돼지의 왕'에서 가장 잔인한 장면 가운데 하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종석과 경민은 철이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것 이외의 다른 선택이 없다.
이분법
돼지의 왕이 강렬하게 관객을 끌어당기는 것은 선명한 이분법 때문이다. 개와 돼지 부자와 가난뱅이, 지배자와 피지배자, 주인과 노예, 가해자와 피해자. 시간이 흘러도 이런 이분법의 세계는 끝내 극복되지 못할 것이라는 감독의 확신이 객석을 까맣고 우울한 그림자로 가득 채운다. 영화는 장밋빛 전망이나 미래기획을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글을 마치면서
돼지의 왕이 강렬하게 관객을 끌어당기는 것은 선명한 이분법 때문이다. 개와 돼지 부자와 가난뱅이, 지배자와 피지배자, 주인과 노예, 가해자와 피해자. 시간이 흘러도 이런 이분법의 세계는 끝내 극복되지 못할 것이라는 감독의 확신이 객석을 까맣고 우울한 그림자로 가득 채운다. 영화는 장밋빛 전망이나 미래기획을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이곳은 얼음보다 차가운 아스팔트와 그것보다 더 차가운 세상이다!" 영화이 마지막 장면세 나오는 종석이 대사다. 몸서리쳐질 만큼 처절한 사건현장에서 절규하는 그의 얼굴은 온통 일그러져 있다. 육체적인 힘, 기억과 영혼이 그의 몸에서 한꺼번에 빠져나갔나 보다. 한없이 흐느껴 우는 종석을 위로할 말이 있을지, 우리는 모른다. 영화가 설득력 있는 까닭은 폭력의 목표지점이 가까운 사람들을 겨냥한다는 데 있다. 철이와 종석, 경민과 아내, 종석과 그의 애인 영미의 관계가 극 것을 보여준다. 15년 전 돼지들의 침묵은 또 다른 증거다. 무기력한 돼지들은 언제나 침묵함으로써 개들이 폭력으로부터 자기네의 안전과 행운을 누렸던 것이다.'돼지의 왕'은 이런 양상이 늘 되풀이되었고, 앞으로도 되풀이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와 동시에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돼지들을 위한 출구는 정녕 없단 말인가?" 이 작품은 처음부터 주목을 받지 않았고 집단 괴롭힘 자살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학교 폭력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드라마 <돼지의 왕>으로 안방극장에 공개되었습니다. 드라마 <돼지의 왕>은 에니매이션처럼 시작은 같으나 결과는 다를 거라고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