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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영화설정 강도와 강도 엄마 이야기

by 단양 2023.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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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에타. 피에타의 뜻과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강도와 강도의 어머니에 대해 인문학 적으로 접근해 보았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로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여하면서 국내에서는 오락영화는 아니지만 50만 관객을 이끌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영화는 제69회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그는 대표적인 저예산영화감독이자 한국 영화계로부터 이단아 취급을 받아온 감독이기도 하다. 피에타는 라틴어로 '불쌍히 여기소서'란 말에서 비롯된 이탈리아어다. 슬픔과 비탄을 의미하며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이다. 이 말은 또 영원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성모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시신을 안고 지그시 내려다보는 조각이나 회화작품을 지칭한다. 이 피에타 상은 미켈란젤로가 로마에 머물던 시절인 25세 때 프랑스인 추기경의 주문으로 제작했으며, 호마 산피에트로 대성당 입구에 놓여있다.

 

영화의 설정

2012년에는 대한민국은 양극단이 충돌하는 모순의 정점에 있다. 소수의 부자와 행복한 사람들의 천국이 한국이고, 다수의 가난뱅이들과 불행한 사람들의 지옥이 대한민국이다. 신문 기사와 뉴스에는 '묻지 마' 칼부림과 허다한 성폭력, 학교폭력과 끝이 없는 자살자들의 이야기가 일상이 된 대한민국이다. '피에타'는 이런 가공할 폭력이 현실에서 어떻게 발행하는지, 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당신이 사채업자에게 300만 원을 빌렸는데 3개월 만에 빚이 3,000만 원이 되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영화는 이런 설정에서 시작한다. 감독의 영화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은 자주 세상으로 부터 절연된 공간에서 가장 밑바닥의 감정과 본능들을 직설적으로 들어낸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드러나나 폭력성과 드러나지 않은 폭력성의 양면을 볼 수 있도록 한다. 이 영화에서 역시 마찬가지로 우리는 드러난 악마성을 표면적으로 보지만 궁극적으로 드러나지 않거나, 드러나기를 꺼려하는 자본의 위선과 본질을 목도하게 된다. 

 

강도는 누구인가

영화에서 관객이 맞닥뜨리는 불편한 점은 주인공 강도의 비인간적인 잔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난 대목이다. 강도는 신체포기각서를 받고 돈을 빌려준다. 채무자가 기한 내에 빚을 갚지 못하면 강도는 그들의 신체일부를 절단하거나 불구자로 만들어 보험금을 타내는 잔인한 수법으로 돈을 번다. 그런 일은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강도를 고용한 사장은 돈의 권력을 최대한 악용하는 악마의 근원이다. 고리 대금업자는 감정에 변화를 느끼고 청부업을 그만두려는 강도를 발로 차면서 '은혜도 모르는 새끼, 꺼져'라며 화를 낸다. 어머니를 돌려달라며 무릎을 꿇고 청원하는 강도에게 '돈 받아오라고 했지, 병신 만들라는 소리는 안 했어. 인간백정 같은 새끼'라는 말까지 한다. 300만 원이 일주일 사이에 3,000만으로 불어나는 고리대금업자의 돈의 권력과 위선이 맨살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자본의 권력 앞에서 위선적인 은혜를 폭력이 강도에게 집중적으로 가해진다. 돈, 자본의 위선적인 은혜는 불법적인 개인의 이윤을 위해 위기를 이용하고, 악마성을 키운다. 강도는 고리대금업자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고리대금업자가 강도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은 강도의 잔혹한 행동과 관련이 있다. 개발로 추방되어야 하는 위기의 공장주들을 상대로 고금리의 이자를 챙기는 고리대금업자는 가족도 아무도 없는 강도를 내세워 피를 묻히도록 한 것이다. 강도의 잔인성은 식사와도 연관되어 있다. 그는 주머니칼을 가지고 다니면서 살아있는 생명체의 살점을 스스로 취한다. 노골적이고 집접적인 강도의 행각은 일상화되고 내면화되어 있다. 인간이든 닭이든 토끼든 심지어 자신의 육체든 그는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그의 무차별 적인 폭력과 칼질에서 인간다움의 성정은 찾을 수 없다.

 

강도의 엄마

어느 날 강도에게 나타난 중년의 여자 방문객. 왜소하고 가녀린 그녀는 강도의 모욕과 손찌검을 끝끝내 참으면서 강도의 엄마를 차저 한다. 느닷없이 나타난 엄마로 인해 강도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워하고, 엄마의 사랑을 경험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는 '가족'의 의미와 가치, 소중함을 가슴속에 담는 것이다. 누군가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신을 위해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는 놀라운 사건을 어떻게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30년 만에 나타난 엄마의 출현은 강도의 심경변화의 중요한 기점이 된다. 그러나 그녀는  아들의 복수를 위해 강도에게 접근하였다. 결과적으로 강도는 자본에 의한 이분법적 계급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방인이다. 자본에 의해 어떤 것에도 속할 수 없었고, 경계에서 양쪽 모두에게 철저히 이용당 하고, 속는다. 그러나 강도의 육체는 두 경계 모두를 극복한다. 강도의 잔인함이 자본가의 이중적인 허위에 의해 길들여진 것이라면, 강도의 육체는 탄생과 함께 버려진 쓸모없는 물질에 불과했다. 즉 강도의 잔인함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눈 감고 있는 상실이 잉태한 결과물이다. 엄마는 김기덕 감독의 다른 작품에 비해 적극적으로 부정적인 오소와 맞서는 캐릭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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